사랑을 가지고 오신 아기예수님.

태어나서 처음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크리스마스 전야미사에 참석했다. 
많은 분들과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예수 앞에 고개 숙여 인사를 드리고,
가장 낮은 데서 나셔서, 가장 지고한 사랑을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삶에 감사드렸다. 

자리가 없어, 두시간 이상 서서 미사를 드리고 있는데,
빼곡히 들어찬 의자에 5남매를 둔 젊은 부부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차림새로 보아 넉넉한 형편같지는 않았지만 잠이와서 칭얼대는 막내 아들을 꼭 껴앉고,
이마에 입을 맞추는 아버지의 모습이 꼭 그리스도의 포근한 사랑을 닮았다.
부러웠고, 또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하지만, 사랑으로 충만한 부모와 형제들 속에서 커가는 
그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법, 사랑받는 법을 배울 것이다.
하지만 세상엔 그렇지 못한 아이들과 어른들이 더 많다.
그래서 그들에게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 아기예수가 나셨다. 

사랑하는 법을 몰라, 지금껏 살아오며 상처를 줬던 많은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언젠가 그들에게 몇 배의 사랑으로  진 빚을 갚고 싶다. 
 


  
 

꽃 다웠던 시절

우리는 모순된 세상 속에서 누군가의 삶을 책임지겠노라고,
그리고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노라고 다짐하곤 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 보면,
'신부님도, 부모님도, 선생님도, 친구도 책임지지 못하는 누군가의 운명을 
어찌 그리 쉽게 책임지겠다고 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참 무모했다.

젊은 날의 열정은 뜨거웠지만,
진정 진실을 마주하고 싶었다면
좀 더 깊은 사유와 냉점함을 가져야 했다. 

다음 주면 나를 책임지겠다고 했던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가 유학을 떠난 탓에 5년이 넘게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은 시간의 간격을 더 넓혀 놓았고,
나는 꼭 10년만에 그를 만나는 기분이다.

그의 씁쓸했던(물론 지금은 금의환향을 하지만) 뒷모습을 보며
그와는 다른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고,
그렇게 고집스레 10년을 살았다.
그러나 결국 나 자신도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애당초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과연 우리는 어떤 말을 처음 꺼내게 될까.

하늘이 희뿌연 안개로

가득했다. 도서관 옥상에서 내려다 볼 수 있었던 모든 풍경이 흔적도 없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자욱하게 낀 안개처럼, 우리 인생에도 가끔은 안개가 낀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흔적도 없이 안개가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안개도 그렇게 사라진다. 지금 안 보인다고 너무 조급해 하지 말자. 곧 길이 보일 것이니.

받은 달란트를

숨겨두기는 커녕, 모두 탕진 한 것은 아닐까.
이제 받았던 것의 몇 배로 돌려드려야 한다.

취업은

동생이 하는데, 내가 왜 더 난리냐.
부디 잘 선택해서 결정하길...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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